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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www.theatlantic.com/education/archive/2018/10/what-my-harvard-college-reunion-taught-me-about-life/573847/

 

What I Learned About Life at My 30th College Reunion

“Every classmate who became a teacher or doctor seemed happy,” and 29 other lessons from seeing my Harvard class of 1988 all grown up

www.theatlantic.com

This translation is not written for commercial purposes, definitely.

 

 

What I Learned About Life at My 30th College Reunion
“Every classmate who became a teacher or doctor seemed happy,” and 29 other lessons from seeing my Harvard class of 1988 all grown up

DEBORAH COPAKEN
OCTOBER 25, 2018

 

동창회 30주기에서 인생에 대해 내가 배운 것 - Deborah Copaken

 

On the weekend before the opening gavel of what’s being dubbed the Harvard affirmative-action trial, a record-breaking 597 of my fellow members of the class of ’88 and I, along with alumni from other reunion classes, were seated in a large lecture hall, listening to the new president of Harvard, Lawrence Bacow, address the issue of diversity in the admissions process. What he said—and I’m paraphrasing, because I didn’t record it—was that he could fill five whole incoming classes with valedictorians who’d received a perfect score on the SAT, but that’s not what Harvard is or will ever be. Harvard tries—and succeeds, to my mind—to fill its limited spots with a diversity not only of race and class but also of geography, politics, interests, intellectual fields of study, and worldviews.

지난 주말 열렸던 동창회를 위한 개회사가 시작 하기 전에, 1988년에 나와 같이 학교를 다녔던 597명의 동기들을 포함해서 또 다른 연도에 졸업한 동창회를 위해 참여했던 모든 사람들이 하버드의 새로운 대표, Lawrence Bacow의 연설을 들었다. Lawrence Bacow는 입학 과정에 다양성이 더 많이 고려되야 한다고 말했다. 녹음을 하지 않았기에, 기억에 의존해서 적는다. SAT에서 만점을 받은 사람들로만 매 입학 전원의 5배를 채울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건 하버드가 아니고 앞으로도 그렇게는 학생을 뽑지 않을거다. 하버드는 지금까지 인종이나 계급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지역적 특성, 정치, 관심사, 학문에 대한 이해도 그리고 세계관을 고려해서 적절한 규모로 다양한 학생들을 입학시키고자 노력해왔다 - 개인적으로는 그런 노력들이 성공해왔다고 생각한다- 

 

I loved my four years at Harvard, largely because of the diversity of its student body. I don’t love the fact—now made public through the trial but previously understood by all of us to be true—that the kids whose parents donate buildings are given preferential treatment over those whose parents don’t. But I understand why the development office, which allows the university to give a free ride to any student whose family makes less than $65,000 a year, might encourage such a practice, which is hardly unique to Harvard. I also don’t love the fact that the Harvard fight song is still “Ten Thousand Men of Harvard,” in a school populated by at least as many women as men, and yet hearing its opening notes can still make me deeply nostalgic. Moreover, I am appalled that all-male final clubs—fraternity-like eating clubs in which the sons of America’s privileged class have traditionally gathered—still exist on campus (albeit with sanctions) without commensurate opportunities, with rare exceptions, for women, minorities, and others, but I also call some of their alumni members my closest friends.

나는 하버드에서 보낸 4년을 사랑한다. 큰 이유는 다양한 학생들 때문이다.  부모가 빌딩을 하버드에 기부했기에 그렇지 않은 부모의 자녀들보다 입학에 우선권이 있다는 사실을 좋아하지 않는다. - 지금은 그런 일이 일어나면 소송을 걸겠지만 과거에는 모두가 이것을 그냥 받아들였다. -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하버드 학교 당국이 연소득 6만 5천불 이하의 가정의 학생들에게 학비를 면제해 주기 위해서-그런 학생들이 하버드에 적지 않다- 그러한 방법을 채택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또, 나는 하버드를 대표하는 노래가 여전히 "하버드의 만명의 남자들"이란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학교는 남자와 동등한 수의 여자를 배출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노래의 첫 소절을 들으면 깊은 향수를 느낀다. 그 뿐만 아니라, 여전히 하버드에서 남자들만 가입 가능한 특별한 친목회가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미국의 특권 계층의 자식들이 전통적으로 모여들었던 그런 사교클럽들이 (제재가 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모두에게 적절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고 특히나 여성, 소수자들에게는 들어가기 더 힘들다는 사실 때문에도 그렇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사교클럽에 속했던 졸업생들을 나의 가까운 친구로 두고 있다.

 

Intelligence, it has been said, is the ability to hold two opposing ideas at the same time and still function, and if universities could be said to have one overriding goal as institutions of higher learning, it is to teach its students this critical skill, Harvard no more than others. Seeing the coin from either of its two sides has never been more important, particularly now, in this nuance-lacking era of divisiveness and nationalism. It’s no wonder that in fascist regimes, the intellectuals are always the first to be silenced.
지능은 상반 되는 두 가지 생각을 묶어도 여전히 쓸모있게 만드는 능력이라고 설명 될 수도 있다.  만약 대학이 교육기관으로서 수준 높은 교육을 제공해야 하는 하나의 큰 목표가 있다면, 위와 같은 지능을 익혀야 하며, 하버드는 그러한 기술을 가르치는 데 그 어떤 학교보다 뛰어나다. 동전의 양면을 보는건 요즘과 같은 분리와 국가주의의 시대에 더욱 중요하다. 파시스트 체제 아래에서 지식인들은 그 누구보다 먼저 침묵하기를 강요받는다.


I believe in the benefits of diversity, even if it means choosing an immigrant kid with a lower-than-usual SAT score (for Harvard) but other stellar qualities, like Thang Q. Diep, Harvard class of ’19, whose application has been trotted out by the lawsuit for all to see. And I’m also aware, as a Jew, that Harvard’s diversity initiative was first put into motion as a way to keep the university’s burgeoning Jewish population in check. I can hold both of these truths—diversity is good; the roots of diversity in the admissions process were prejudiced against my own people—and not only still be able to function but also to see that sometimes good results can come from less-than-good intentions.

다양성에 중점을 두는 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버드를 입학하기에 낮은 SAT 점수를 받은 이민자의 자녀라도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면 입학할 자격이 있다. 2019년에 하버드를 졸업했고, 법정에 의해서 지원서가 공개된 Thang Q. Diep도 그런 사람 중 한명이다. 또한 유대인으로써, 대학에서 급증하고 있는 유대인 인구에도 신경을 써야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다음 두가지가 모두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다양성은 좋은 것이다. 입학 과정에서 다양성을 존중하는 전통은 입학과정에 대해서 내 주변 사람들에게 의구심을 품게 했다. 그리고 다양성이 중요하기 때문이라는 이유 뿐만 아니라, 가끔은 의도한 것 보다 더 좋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Because the point of diversity on a college campus, no matter its less-than-honorable roots, is not to count how many brown faces versus how many white and black faces a school has. It is to provide a rainbow of politics and upbringings and thought processes and understandings that might teach us, through our differences, how similar we are.

좋지 못한 동기로 시작한 것이라고 한다고 하더라도, 대학교에서 다양성을 존중한다는 건, 교정에서 갈색 얼굴, 흰색 얼굴, 검은색 얼굴의 숫자를 세는 것과는 다른 문제이다. 다양성을 존중한다는 건 다양한 정치적 견해, 다양한 가정,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존중한다는 것이고 이런 과정들을 통해 우리에게 많은 차이점이 있어도 얼마나 비슷한 점이 많은 지 배울 수 있다.

 

Though we all went to the same school, and Harvard’s name likely opened doors for many of us, at the end of the day—or at the end of 30 years since graduation, in this case—what was so fascinating about meeting up with my own richly diverse class during reunion was that no matter our original background, no matter our current income or skin color or struggles or religion or health or career path or family structure, the common threads running through our lives had less to do with Harvard and more with the pressing issues of being human.

30년이나 지금 오늘날에 이르러서 동창생들을 되짚어보자면, 현재 수입이 어떻든지, 어떤 피부 색깔을 가지고 있든지, 어떤 고난을 겪었든지,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든지, 건강, 경력, 가족의 구성원이 어떻든지 우리의 삶을 관통하는 공통점은 우리가 하버드를 졸업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우리가 모두 사람이라는 점이다. 

Life does this. To everyone. No matter if or where they go to college. At a certain point midway on the timeline of one’s finite existence, the differences between people that stood out in youth take a backseat to similarities, with that mother of all universal themes—a sudden coming to grips with mortality—being the most salient. Not that this is an exhaustive list, but here are 30 simple shared truths I discovered at my 30th reunion of Harvard’s class of 1988.

삶은 모든 사람들에게 이런 행동을 한다. 어떤 대학을 가든지 혹은 대학 진학을 하지 않든지, 모든 유한한 존재는 살아가는 동안에 반드시 한번은 이런 일들을 겪게 된다. 사람들이 모두 다르더라도 거대한 우주의 법칙 아래에서는 같은 경험을 한다는 점에서는 우리가 모두 같다. 아래의 목록이 삶에 대한 규칙을 하나도 빠짐 없이 규정한 건 아니지만, 1988년에 하버드를 졸업한 동창회에서 내가 찾아낸 30개의 간단한 서술이다.


1. No one’s life turned out exactly as anticipated, not even for the most ardent planner.

그 어떤 사람의 삶도 기대한 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가장 철저한 계획을 세웠던 사람도 마찬가지다.


2. Every classmate who became a teacher or doctor seemed happy with the choice of career.

교사나 의사가 된 사람들은 대체로 행복해보였다.

 

3. Many lawyers seemed either unhappy or itching for a change, with the exception of those who became law professors. (See No. 2 above.)

법학 교수가 된 경우를 제외하고(2번을 참조하라) 대부분의 변호사들은 행복하지 않았으며 변화 하고 싶어했다.

 

4. Nearly every single banker or fund manager wanted to find a way to use accrued wealth to give back (some had concrete plans, some didn’t), and many, at this point, seemed to want to leave Wall Street as soon as possible to take up some sort of art.

거의 대부분의 은행가나 펀드 매니저들은 그들이 축적한 재산을 환원할 방법을 찾고 있었다. 또 많은 사람들은 무언가 그들이 꿈꾸는 것을 하기 위해서 가능한 빨리 월 스트리트를 떠나고 싶어하는 것 처럼 보였다.

 

5. Speaking of art, those who went into it as a career were mostly happy and often successful, but they had all, in some way, struggled financially.

예술을 선택한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그들은 대부분 행복해 보였고, 어떤 사람들은 성공하기도 했으나 한편으로 대부분은 경제적으로 궁핍한 시기를 거쳤다.

 

6. They say money can’t buy happiness, but in an online survey of our class just prior to the reunion, those of us with more of it self-reported a higher level of happiness than those with less.

돈으로는 행복을 살 수 없다고 말했으나, 동창회 직전에 이뤄진 온라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더 많은 재산을 가진 사람들이 더 적은 재산을 가진 사람들 보다 전반적으로 더 행복하다고 기입했다.

 

7. Our strongest desire, in that same pre-reunion class survey—over more sex and more money—was to get more sleep.

지난 여러번의 동창회에서 한 설문들과 같이 가장 큰 욕망은 더 많은 잠을 자고 싶다는 것이었다. - 더 많은 섹스와 더 많은 돈을 뛰어넘어서.


8. “Burning Down the House,” our class’s favorite song, by the Talking Heads, is still as good and as relevant in 2018 as it was blasting out of our freshman dorms.

"Burning Down the House"는 동창들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다. 이 노래는 2018년에도 여전히 훌륭하고, 또 신입생일 때 기숙사에서 흘러나왔던 노래다.

 

9. Many of our class’s shyest freshmen have now become our alumni class leaders, helping to organize this reunion and others.

가장 낯을 가리던 신입생들은 지금은 동문들을 연결하는 역할을 맡고 있으며 이번 동창회와 같은 행사를 주관하고 있다. 

 

10. Those who chose to get divorced seemed happier, post-divorce.

이혼을 선택한 사람들은 이혼하기 전 보다 더욱 행복해 보인다.


11. Those who got an unwanted divorce seemed unhappier, post-divorce.

원치 않은 이혼을 한 사람들은 이혼하기 전 보다 덜 행복해 보인다.

 

12. Many classmates who are in long-lasting marriages said they experienced a turning point, when their early marriage suddenly transformed into a mature relationship. “I’m doing the best I can!” one classmate told me she said to her husband in the middle of a particularly stressful couples’-therapy session. From that moment on, she said, he understood: Her imperfections were not an insult to him, and her actions were not an extension of him. She was her own person, and her imperfections were what made her her. Sometimes people forget this, in the thick of marriage.

장기간 결혼을 유지한 사람들은 그들의 결혼이 성숙한 관계로 전환되는 특별한 순간을 경험한 것 처럼 보인다. 내 동창이었던 그녀는 부부관계 개선 프로그램에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어!" 라고 남편에게 말했다고 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그 순간부터 그녀의 남편이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녀의 불완전함은 그를 모욕하기 위한 것도 아니고, 그녀의 행동 역시 그를 자극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그녀는 한 명의 사람이며, 그녀의 불완전함이 그녀를 '그녀'로 존재하게 한다. 결혼을 하고 나면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종종 잊는다.


13. Nearly all the alumni said they were embarrassed by their younger selves, particularly by how judgmental they used to be.

거의 모든 졸업생들은 그들의 젊은 시절을 부끄러워한다. 특히 그들이 과거에 얼마나 단정적으로 굴었는지에 대해서.

 

14. We have all become far more generous with our I love you’s. They flew freely at the reunion. We don’t ration them out to only our intimates now, it seems; we have expanded our understanding of what love is, making room for long-lost friends.

우리는 모두 사랑한다는 표현을 전보다 더 스스럼 없이 한다. 사랑한다는 말은 동창회 내내 들렸다. 사랑한다는 말을 의미 없이 또는 단지 지금 친밀한 사람들을 위해서만 하는 게 아니라, 연락하지 않았던 오랜 친구들에게도 더 넓어진 사랑의 의미를 전했다.

 

15. No matter what my classmates grew up to be—a congressman, like Jim Himes; a Tony Award–winning director, like Diane Paulus; an astronaut, like Stephanie Wilson—at the end of the day, most of our conversations at the various parties and panel discussions throughout the weekend centered on a desire for love, comfort, intellectual stimulation, decent leaders, a sustainable environment, friendship, and stability.

Jim Himes와 같은 정치가가 되었든, Tony Award를 수상한 Dian Paulus와 같은 감독이 되었든, Stephani Wilson과 같은 우주비행사가 되었든 그날 있었던 모든 이야기들은 사랑에 대한 욕망과 편안함, 지식의 나눔, 괜찮은 지도자, 지속가능한 환경, 우정 그리고 안정에 대한 것이었다.


16.  Nearly all the alumni with kids seemed pleased with their decision to have had them. Some without kids had happily chosen that route; others mourned not having them.

거의 모든 자식을 둔 사람들은 자식을 가지기로 한 결정에 만족하는 것 처럼 보였다. 아이를 가지지 않기로 결정한 몇명은 만족했고, 아이를 가지기 않기로 결정한 또 다른 이들은 그들의 결정을 후회했다.


17. Drinks at a bar you used to go to with your freshman roommate are more fun 30 years later with that same freshman roommate.

바에 함께 가서 술을 마시고 하던 새내기 때의 룸메이트와 30년이 지나서 다시 술을 마시는 건 정말 좋은 경험이다. 


18. Staying at the house of an old friend, whenever possible, is preferable to spending a night in a hotel. Unless you’re trolling for a new spouse or a one-night stand, as some of my classmates seemed to have been doing, in which case: hotel, hotel, hotel.

가능한 한 오랜 친구의 집에서 머무르는 게 호텔에서 머무는 것 보다 좋다. 새로운 배우자나 하룻밤을 위해서 배회하는게 아니라면. 어떤 친구들은 그렇게 하는 것 처럼 보인다. 

 

19. Nearly all the attendees who had spouses had, by the 30th reunion, left theirs at home.

거의 모든 기혼 참석자들은 30주년 동창회에 그들의 배우자들을 집에 남겨두고 왔다. 

 

20. Most of our knees, hips, and shoulders have taken a beating over time.

대부분 시간이 지나면서 무릎, 엉덩이, 어깨에 통증을 호소했다. 

 

21. A life spent drinking too much alcohol shows up, 30 years later, on the face.

너무 많은 음주는 30년이 지남에 따라 얼굴에 나타난다.

 

22. For the most part, the women fared much better than the men in the looks department.

대부분의 경우에 여자들의 외관이 남자들 보다 나아보였다.

 

23. For the most part, the men fared much better than the women—surprise, surprise—in the earning-potential-and-leadership department.

대부분의 경우에 남자들의 수입이나 리더십이 여자들 보다 나아보였다.

 

24. A lack of affordable child care and paid maternity leave had far-reaching implications for many of our classmates, most of them female: careers derailed, compromises made, money lost.

적당한 보육 시설과 유급 출산휴가가 부족했던 사실은 많은 여성에게 영향을 미쳤다. 경력이 단절되거나, 현실과 타협하게 만들었고 금전적인 손실을 보기도 했다.

 

25. When the bell atop Memorial Church tolled 27 times to mark the passing of 27 classmates since graduation, we all understood, on a visceral level, that these tolls will increase exponentially over the next 30 years.

졸업 이후 사망한 27명의 동창을 기리기 위해 메모리얼 교회의 종이 27번 울렸을 때, 우리 모두는 앞으로 30년 동안 이 종이 기하급수적으로 많이 울릴 것이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26. It is possible to put together a memorial-service chorus of former alumni, none of whom have ever practiced with one another, and make it sound as if they’d been practicing together for weeks. Even while performing a new and original piece by the choral conductor.

장례에 부를 노래를 위해서 이전의 졸업자들은 모여서 연습을 했는데, 한번도 연습한 적 없던 사람들도 몇 주 동안 연습을 해온 것 처럼 곧 잘 맞추어 노래했다. 합창단 지휘자가 예전 곡과 새로운 곡을 공연하는 동안에도.

 

27. In our early 50s, people seem to feel a pressing need to speak truths and give thanks and kindness to one another before it’s too late to do so. One of my freshman roommates thanked me for something that happened in 1984. A classmate who was heretofore a stranger, but who had read my entry in the red book, our quinquennial alumni report—in which I recounted having taken an Uber Pool to the emergency room—offered to pay for my ambulance next time, even going so far as to yank a large pile of bills out of his pocket. “That’s okay,” I told him, laughing. “I don’t plan to return to the emergency room anytime soon. ”

1950년대 초반에는 사람들은 진실을 말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 것 처럼 보였으며, 상대방에게 너무 늦기 전에 감사함을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1학년 때 동기들 중 한명은 1984년에 일어났던 일에 대해서 나에게 감사를 표현했다.

 

28. Those who’d lost a child had learned a kind of resilience and gratitude that was instructive to all of us. “Don’t grieve over the years she didn’t get to live,” said one of our classmates, at a memorial service for her daughter, Harvard class of 2019, who died last summer. “Rather, feel grateful for the 21 years she was able to shine her light.”

자녀를 일찍 떠나보낸 사람들은 우리 모두에게 교훈이 될만한 회복력과 감사함을 배웠다. "그녀가 살지 못한 세월을 슬퍼하지마세요" 동창 한명이 2019년 하버드 모임, 지난 여름에 죽은 그녀의 딸을 기리는 자리에서 얘기했다. "대신, 그녀가 21년동안 그녀의 빛을 밝히면서 살아온 것에 감사함을 느낍니다."

 

29. Those of us who’d experienced the trauma of near death—or who are still facing it—seemed the most elated to be at reunion. “We’re still here!” I said to my friend, who used to run a health company and had a part of the side of his face removed when his cancer, out of nowhere, went haywire. We were giggling, giddy as toddlers, practically bouncing on our toes, unable to stop hugging each other and smiling as we recounted the gruesome particulars of our near misses.

죽음과 같은 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은 사람들은 동창회에 참석한다는 사실에 가장 기뻐하는 것 처럼 보였다. 건강과 관련된 회사를 운영했던 내 친구는 난데 없이 암이 악화되자 얼굴의 일부분을 제거했었다. 나는 그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여전히 여기 있어." 우리는 킬킬대고 웃고 어린아이처럼 들떠서, 발가락을 동동 거리고 서로를 끌어 안는 걸 멈출 수 없었다. 마치 우리가 굉장한 걸 거의 놓칠뻔 한 것 처럼 이야기했다. 
 

30. Love is not all you need, but as one classmate told me, “it definitely helps.”

사랑이 당신에게 필요한 전부는 아니다. 하지만 어떤 친구는 얘기했다. "분명히 도움이 돼"


DEBORAH COPAKEN is a contributing writer at The Atlantic. The author of The Red Book and Shutterbabe, she's currently at work on a new memoir for Random House, Ladyp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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